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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노무현의 동지, 노무현 계승자 되다

경희대 재학 때 시위로 제적 노무현과 인권변호사로 인연 "정치는 안 한다" 조건 내걸고 청와대 입성해 민정수석 지내 1년 만에 그만두고 야인 생활 노 대통령 탄핵 소식에 재합류 "남겨진 숙제" 하러 정계 입문 2012 대선 패배 후 재기 성공 문재인이 10년 만에 청와대로 돌아간다. 신분은 바뀌었다. 노무현의 동지, 노무현 정부의 2인자가 아니라 노무현의 계승자이자 문재인 정부의 1인자다. 그는 마지막 도전이라던 2017년 5월 '장미대선'에서 19대 대통령으로 청와대에 입성하게 됐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를 잇는 제3기 민주 정부의 대통령." 문재인이 7일 광주 유세에서 강조한 차기 대통령의 의미다. #학생 문재인 "제 아버지는 공산주의가 싫어서 피란오신 분이다. 영하 27도 흥남 부두에서 출발한 미국 화물선에 부모님과 누님이 타고 있었다."(지난달 24일 방송연설) 문재인은 1953년 1월 경남 거제에서 가난한 피란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함남 흥남에 살던 부모는 어렵게 미군 배에 몸을 싣고 남으로 향했다.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인 50년 12월 23일 흥남 철수 때였다. 곤궁한 삶과 교육 문제 때문에 문재인의 부모는 부산으로 이사했다. 65년 남항국민학교, 68년 경남중을 졸업한 문재인은 부산 명문 경남고(25회)에 수석 입학했다. 승효상(건축가), 박맹우(국회의원), 박종웅(전 의원) 등이 경남고 동기였다. 고교 시절 초기에는 '문과에 문재인, 이과에 승효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술.담배에 손을 댔고 싸움을 하다 정학도 당했다. 결국 재수 끝에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경희대 법대(72학번)에 수석 입학했다. 그는 "원래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싶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이 반대해 할 수 없이 방향을 틀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청년 문재인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들, 특전사 출신 저 문재인 앞에서 안보 이야기 꺼내지도 마라."(5일 부산 연설) 경희대 법대에 입학한 문재인은 운동권 학생이 됐다. 고시 준비 대신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75년 4월 집회 때 구속되면서 그해 6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석방된 후엔 곧바로 강제 징집됐다. 특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이었다. 군 복무 중 최우수 표창을 받기도 했다. 당시 특전사령관은 79년 12.12 때 신군부 세력에 총격을 받은 정병주 소장, 소속 여단장은 훗날 대통령이 된 전두환 준장이었다. 제대 후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79년 1차 시험에 합격했다. 이듬해엔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 도중 2차 시험을 치렀다. 하지만 시위로 구속되면서 2차 시험 합격증은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서 받았다. #변호사 문재인 "저는 대한민국 1세대 노동변호사 출신입니다. 1982년부터 30년 동안 노동 동지들과 함께해 왔습니다."(1일 한국노총 연설) 문재인은 사법연수원(22기)을 차석 졸업했다. 수료식에서 법무부장관상도 받았다. 박원순(서울시장), 고승덕(전 국회의원), 조영래(변호사) 등이 연수원 동기였다. 하지만 그는 희망했던 판사가 되지 못하고 동기들이 판.검사로 임용되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시위 경력 때문이었다. '변호사' 문재인은 김앤장 등 대형 로펌의 제의를 받았지만 82년 부산으로 낙향했다. 그곳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꾼 사람을 만났다. 변호사 노무현이었다. 노무현과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인권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88년에는 김영삼으로부터 노무현.김광일과 함께 국회의원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문재인은 3명 중 유일하게 정치 입문을 거절했다.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해 '5공 청문회' 스타가 된 뒤에도 그는 부산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을 지내면서 인권변호사로 일했다. #청와대 참모 문재인 "저 문재인은 대통령의 눈으로 국정을 경험했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 하면서 외교.안보.국방.국가경제.균형발전.사회갈등 모두 다뤄봤습니다."(7일 충주 연설) 문재인은 변호사 활동을 하며 정치권으로부터 꾸준히 러브콜을 받았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하지만 '동지' 노무현이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노무현이 그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시장 출마를 권유했지만 '나는 참모용'이라면서 고사했다. 노무현이 접전 끝에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16대 대통령이 됐다. 문재인은 "사법시험 합격과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이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일"이라고 꼽는다. "민정수석으로 끝낸다" "정치하라고 하지 말라"는 두 가지 조건으로 청와대 입성에 동의했다. 노무현 청와대의 초대 민정수석을 지냈지만 건강 악화와 총선 출마 압박이 겹치자 1년 만에 청와대를 나왔다. #야인 문재인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온 것 같다.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도 마치 정해진 것처럼 느껴진다."(자서전 '문재인의 운명') 청와대를 떠난 문재인은 경남 양산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웃 김해의 봉하마을 사저로 내려간 노무현과 자주 교류했다. 그러던 2009년 5월 23일, 새벽에 걸려온 전화벨이 문재인을 깨웠다. 그날 이후 그는 노무현 국장(國葬)의 상주가 됐다. #정치인 문재인 "제 인생의 마지막 도전입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8일 기자회견) 그의 첫 도전은 2011년 시작됐다. 문재인은 18대 대선을 1년 앞둔 2011년 6월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러곤 2012년 4월 총선에서 부산 사상에 출마해 당선됐다. 6월엔 "보통 사람이 중심이 된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민주통합당 후보로 선출된 그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의 협상 끝에 단일 후보로 나섰다. 하지만 19일 선거에서 1469만 표(48%)를 얻고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패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 출마한 문재인은 '홀로서기'를 선언한다. 전당대회 연설에서 "제 앞에는 세 번의 죽을 고비가 있다. 당 대표가 안 돼도, 당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도, 총선을 승리로 이끌지 못해도 제 역할은 없다"면서 박지원과의 대결에 나섰다. 그리고 3.5%포인트 차이로 당 대표가 됐다. 하지만 안철수가 탈당해 당이 쪼개졌다. 비주류의 압박이 거세지자 대표직에서 물러난 그는 김종인 전 의원을 영입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겼다. 그리고 국민의당 지지도가 높았던 광주에선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계 은퇴,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민주당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원내 1당이 되며 고비를 넘겼다. 지난해 연말부터 최순실 게이트와 촛불집회, 대통령 탄핵 사태로 대선 시계가 급박하게 돌아갔다. 문재인은 빨라진 '장미대선' 무대에서 1위 후보로 부상했다. '든든한 대통령'을 대선 슬로건으로 내세운 그는 공식 선거운동 첫날부터 이렇게 외쳤다. "저 문재인, 대통령 준비 끝냈습니다." 정종훈 기자

2017-05-09

'제왕'아닌 소통하는 대통령 되십시오

겸손 통합 신뢰 정의 남북관계. 문재인 제19대 대통령을 향해 한인들이 강조한 키워드들이다. 9일 이른 아침부터 대선 개표 상황을 지켜보던 한인들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다양한 반응들을 쏟아냈다. 탄핵 정국 이후 이어진 불신과 분열이 한인사회에 여전히 깊게 남아 있었지만 대다수는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들어 달라"는 희망 섞인 목소리를 냈다. 플러싱 금강산 식당에서 개표 방송을 지켜보던 장태영(48)씨는 "예전의 모든 나쁜 것을 버리고 진취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비리 없는 대통령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을 향해 한인들은 군림하는 대통령이 아닌 겸손한 모습으로 국민들을 잇는 연결고리가 돼야 한다는 조언을 했다. 손호균 뉴저지경제인협회장은 "문 대통령이 스스로를 내세우기보다는 자신 역시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자세로 국정을 운영했으면 한다. 제왕적 지도자가 아닌 소통을 이끄는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국민 통합 및 해외 동포까지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한인상공회의소 김선엽 회장도 "국민을 위해 일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며 "해외 동포들의 권익신장에도 힘써 달라"고 부탁했다. 통합과 화합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오재창(66)씨는 "나라가 두 갈래로 분열돼 있다. 통합을 해서 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뉴욕한인학부모협회의 최윤희 공동회장은 "우리 국민들이 그간 많은 상처를 받았다. 이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해 나어갈 수 있는 화합의 대통령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대통령과 국민이 서로를 신뢰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종철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 부시장은 "더 이상 편을 가르지 말고 국민이 잘 사는 길을 찾는 게 중요하다. 찬성을 했든 반대를 했든 문재인 후보가 당선이 됐으니 믿어줘야 한다"며 "일각에서는 북한에 퍼준다는 식의 말도 있고 선거 결과가 실망스럽다는 말도 있지만 이제는 모두가 승복하고 새 리더를 믿어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경만(58)씨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달라며 "서민들을 위하는 자기 주머니만 챙기지 않는 진짜 대통령이 돼 달라"고 주문했다. 경직된 남북관계를 슬기롭게 풀어 달라는 바램도 컸다. 양유환 필그림교회 장로는 "남북간 경직된 관계를 풀고 한반도가 화합으로 나아가길 동포의 한 사람으로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선거 결과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한인들도 적지 않았다. 플러싱에서 만난 한 한인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매우 실망스럽다. 문 대통령이 자기 고집대로 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문 대통령이 직면한 최대 과제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분열과 갈등 치유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최수진·서한서 기자 choi.soojin1@koreadaily.com

2017-05-09

문재인 "통합 대통령 되겠다"

홍준표 24%, 안철수 21.4% 홍 "자유한국당 복원 만족" 안 "국민 선택 겸허히 수용" 문재인(64)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선거 다음 날인 10일 낮(이하 한국시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5년 임기를 곧바로 시작했다. <관계기사 A-2·3면, 한국판> 문 대통령은 9일 실시된 선거에서 개표 완료 결과 득표율 41.08%(1342만3762표)를 기록, 785만2843표(24.03%)를 얻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큰 차이로 이겼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699만8323표(21.41%),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220만8767표(6.76%),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01만7451표(6.17%)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대구.경북.경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리했으며 홍 후보는 이들 지역에서 1위를 차지했다. 안 후보는 한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한 가운데 수도권과 호남, 그리고 대전.세종.제주에서 2위를 기록했다. 문 대통령은 10일 오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당선증을 교부받으며 당선인에서 신분이 바뀌었고 서울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후 국회에서 간단한 취임식을 했다. 문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광화문광장 인근 세종로공원에 나와 집결한 시민들에게 승리를 선언한 뒤 "위대한 국민들의 위대한 승리"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며 "정의로운 나라, 상식이 바로 서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또 경쟁 후보들에게도 감사의 위로를 전한다며 "그 분들과도 함께 손잡고 미래를 위해 함께 전진하겠다"고 덧붙였다. 다른 당의 후보들은 모두 선거 결과에 승복하며 패배를 인정했다. 득표율 2위의 홍 후보는 "자유한국당을 복원하는 데 만족하겠다"며 "이번 선거 결과를 수용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안 후보는 "국민의 선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변화의 열망에 부응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며 "대한민국이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 미래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바른정당 유 후보는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의 목소리도 겸허히 경청하는 대통령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정의당 심 후보는 "이번 선거는 우리 당의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것"이라며 당원들을 위로했다. 신동찬 기자 shin.dongchan@koreadaily.com

2017-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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